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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회칼럼

    그래도 용서하고, 그래도 사랑하며 살자!
    2025-01-22 17:31:08
    문유영
    조회수   38

    당신은 혹시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 달리는 차 속에 있어 본 경험이 있는가?

    속도란 제어장치에 의해서 조절될 때만 유용한 가치가 있다.

    우주의 움직임은 하나님의 전능한 손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완전한 질서와 아름다움을 유지하며 생명력을 분출한다.

    제어장치가 없는 속도는 사람과 그 문화와 사회를 파괴시키고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다. 

    오늘 우리는 고장 난 브레이크의 자동차 속에 함께 탄 사람들과 같다.

    성장과 발전의 속도에 편승하고 불의와 불법과 음란과 부정의 가속도에 휘말려 가고 있다.

    그리고 절대가치를 상실한 물질적 향락주의와 무신론적 인본주의에 비탈길에 서 있다.

    고장난 브레이크는 모든 것을 파괴시킨다.

    차에 타고 있는 사람 뿐 아니라 그 차에 부딪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파괴해 버린다.

     

    최근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성경에 기록된 말세에 나타날 현상들과 너무나 흡사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두 눈을 감아볼 수도 귀를 막을 수도 없다.

    특별히 세상 끝날에 있게 될 징조들 가운데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두 구절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12절)는 말씀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는 말씀이 가슴을 두드린다.

     

    어떤 분과 탄핵 정국, 경제 위기, 사회 혼란에 대해서 의견을 주고 받다가 얻게 된 결론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 밭이 무섭게 파괴되어 간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속에 분노와 미움이 도사리고 있어 심령이 강팍해지고 독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를 죽이고 피를 보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한이 진하게 서려 있는 것이다.

    분노와 미움의 결론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제일 먼저 치료 받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되었다.

    비록 문제는 해결 될 수 있어도 이미 독버섯처럼 자라난 이 분노와 미움을 무엇으로 치료할 수 있겠는가?

    분노와 미움의 악령은 계속해서 끔찍하게도 분노와 미움을 증가시킬 뿐이다.

    결국 모든 사람을 다 죽이고 결국 자기 자신도 죽이고 말 것이다.

     

    과연 오늘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 대해서

    어떤 기도를 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하나님이여 저들을 심판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라고 중보기도를 해야 할 것인가?

    죄와 불의와 부정에 대해서 타협하고 눈을 감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신자라면 특별히 그가 불의 때문에 억울함과 고난을 겪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께 대신 비는 용서의 기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예수님께서 용서의 한계를 묻는 베드로에게 용서의 한계는 없다고 가르쳐 주신 것을 상기해 본다.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우리 사회를 구원하는 길은 용서하고, 사랑하고,

    대신 매 맞고, 대신 고난을 당하는 길 밖에 다른 무엇이 있겠는가?

    사도행전에 나타난 스데반의 모습과 그 순종의 현장을 우리는 다시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를 죽이려고 손에 손에 돌을 들고 모였던 사람들이 귀를 막고 이를 갈면서 돌을 던졌다.

    그러나 스데반은 피투성이 모습 그대로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해

    소리 지르거나 반항하거나 욕하지 아니하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는 기도 속에서 죽어갔다.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여,

    죄악이 크고 불의가 클수록 우리의 중보기도 소리도 커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의 죄악이 크고 상처가 클수록 대신 아픔을 지고

    상처를 싸매야 할 장본인들이 바로 우리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세상에 대한 고발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방관자도 아니다.

    둘 사이에 서서 화해자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서,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사이에서 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를 보여 주어야 한다. 

    예수님처럼, 스데반처럼 그래도 우리는 용서하고, 그래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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