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칼럼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와 가족들이 2013년 8월 아들의 대학 학위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독일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딸은 2학년이었다. 타국에서 새로운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건 좋았지만 고국에서 감내해야 할 것도 많았다. 첫 번째가 한국어였다. 유년기 5년을 독일에서 보냈던 터라 한국말이 서툴렀다. 성적도 최하위권이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비행청소년’이란 말뜻을 몰라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비행청소년을 ‘비행기 타는 청소년’이냐고 물었다가 된통 놀림을 당한 것이다. 낯선 학교생활, 또래 문화 등으로 주눅이 들 때가 많았다.
다행히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말도 늘고 공부에도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예상치 못한 고민에 빠졌다. 강남으로 위장전입을 하느냐 마느냐였다. 옥수동과 강 건너 압구정동은 동호대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많은 면에서 차이가 났다. 압구정동이 있는 강남은 소위 잘나간다는 고등학교가 즐비했다. 때문에 아들이 다니던 중학교 학생들은 절반 넘게 강남으로 위장전입을 하곤 했다. 그렇게 하는 게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현명한 선택이라 인정받고 있었다.
“친구들 말이 강남으로 안 가면 좋은 대학 가는 거는 포기해야 한대. 나 어떻게 해.”
아들의 말이 잔잔했던 마음에 파동을 일으켰다. 강남에는 처남이 살고 있어서 아들 주민등록지를 강남으로 옮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등하교도 강남이 훨씬 수월했다. 압구정동은 옥수역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만 가면 됐지만, 옥수동 근방에 있는 고등학교들은 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중에는 적잖은 고민거리가 됐다. 내 눈치가 심상치 않았던지 하루는 아내가 나와 아들이 있는 자리에서 위장전입 얘길 꺼냈다.
“옥수동에 사는 것 때문에 좋은 대학 못가면 어때. 설령 대학을 못 들어가도 괜찮아. 대학 못 가면 트럭 사서 나랑 채소 장사 하자.”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였다. 나를 향한 꾸지람이기도 했다. 목사라는 사람이 불법인 줄 뻔히 알면서도 위장전입을 고민했다는 게 너무나 부끄러웠다. 세상 사람들이 다 가더라도 기독교인이라면 가지 말아야 할 길이 있다. 내겐 위장전입이 가지 말아야 할 길 중의 하나였다.
정신을 차린 나는 아들의 어깨를 다독이며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자”고 말했다. 기운이 쑥 빠진 듯 보였지만 아들은 고맙게도 나와 아내의 말에 순종했다. 3년 후 아들과 우리 가정에 하나님은 놀라운 선물을 안겨주셨다. 아들은 집에서 꽤 먼 중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과외 한 번 받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우리나라 최고 대학 경영학부에 합격했다.
합격 통지를 받던 날 아들은 “아빠 말대로 하나님께서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셨다”고 말했다. 나의 고백이기도 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바라시고, 믿음으로 걷는 자들에게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3516&code=23111513&sid1=fai&sid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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