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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경의 열매] 호용한 (14) 독거노인에 우유배달… 건강 지키고 고독사도 예방 [출처] - 국민일보
    2020-06-25 12:56:55
    오범식
    조회수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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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용한 옥수중앙교회 목사가 2016년 12월 교회 인근 장애인 어르신 댁을 찾아가 인사를 나눈 뒤 손을 잡아주고 있다.


    2003년 무렵 옥수동과 금호동에는 다닥다닥 붙은 연립주택과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 집이 대다수였다. 홀로 살거나, 손주들과 사는 조손가정 어르신들은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 등이 굽고 초라한 옷차림으로 쓰레기더미를 뒤적이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끼니나 제대로 챙겨 드시는지 염려가 됐다.

    그 무렵 고독사 뉴스도 종종 신문이나 TV에서 흘러나왔다. 혼자 사는 탓에 집에서 돌아가신지 아무도 몰랐고, 몇 달 만에 시신이 발견됐다는 이야기가 우리 동네라고 예외일 수는 없겠다 싶었다.

    하루는 새벽기도회에 가기 위해 차를 몰고 교회 골목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우유 배달 오토바이였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다가 순간 ‘이거다’ 싶었다. 우유에는 칼슘이 많아 골다공증으로 힘들어하는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배달원이 매일 아침 우유를 배달하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고독사도 체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실행은 쉽지 않았다. 재정이 문제였다. 당시 우리 교회는 전체 경상비의 30%가량을 구제와 장학에 사용하고 있었던 터라 별도로 우유 배달에 재정을 투입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독거노인 문제를 모른 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릴없이 고민만 거듭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몇 개월 후 길이 열렸다.

    포항에서 큰 처남의 해군 소장 이취임식 행사를 마치고 바로 손위 처남과 같은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올 때였다. 처남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는데 명절에 잠깐 만나 안부를 나눌 뿐 나와는 그리 살가운 관계가 아니었다. 처남이 그날은 문득 교회에 도울 일이 없는지 물어왔다.

    “옥수동이 달동네잖아. 어렵게 사시는 분들 많을 텐데 도울 일 없어?”

    지금까지 한 번도 매제가 하는 일을 도와준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이번 기회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나는 옳거니 싶어 그동안 해왔던 고민거리를 털어놓았다.

    “독거노인들에게 우유 배달을 하고 싶은데 좀 도와주시면 어떨지.”

    처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다시 물었다. 순간 당황했다. 우유 배달을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지, 얼마만 한 규모로 해야 할지 정하질 않았던 것이다. 당시 200ml짜리 한 달치 우윳값은 2만원 가량이었다. 너무 많이 부르면 지레 겁을 먹을 것도 같고 그렇다고 너무 작게 부르자니 좋은 기회를 놓칠 것만 같았다. 짧은 순간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이윽고 내가 내린 결론은 100가정이었다.

    “한 달에 200만원 정도요.” 처남은 조금 부담이 됐던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러곤 계속은 못 하고 3년만 하겠다고 덧붙였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솔직히 1년도 감사한데 3년이면 더할 나위 없는 지원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처남에게 독거노인들에게 우유 배달이 왜 필요한지 고독사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4161&code=23111513&sid1=fai&sid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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