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칼럼

높다란 아파트 단지들이 많이 들어서긴 했지만, 옥수동과 금호동에는 아직도 가난한 이들이 많다. 과거 달동네의 흔적들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2001년 옥수중앙교회에 부임한 이후 달동네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첫 심방 때의 일이다. 여전도사, 교인 몇 명과 함께 30대 여집사님의 집을 심방했다. 가파르고 좁은 골목 끝에 낡은 2층 연립주택이 있었는데 슬래브 지붕 위에 있는 옥탑방이었다. 가파른 철제 계단을 타고 지붕에 오르니 금호동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집사님은 미싱사였다. 평소 같으면 열심히 일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담임목사가 심방을 온다고 휴가까지 내고 기다리던 참이었다. 배와 차를 내왔는데 언뜻 보기에도 제법 값이 나갈 것 같았다. 집사님의 삶은 시골에서 올라와 늦은 나이에 남편을 만난 이야기에 둘 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어 고생한 기억들, 회사 택시를 모는 남편이 사납금 스트레스에 요즘 술을 더 마신다는 걱정, 지금 사는 옥탑방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는 사연 등 어느 하나 고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어느 순간 배를 깎던 집사님의 손가락에 난 상처와 굳은살들이 보였다. 미싱일을 하다 생긴 것들이 분명했다. 손가락마다 두 개씩은 넘는 듯했다.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담임목사가 심방을 온다고 큰맘 먹고 비싼 배를 골랐으리라.
심방예배를 시작하려고 기도하는데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철제 계단을 오르면서부터 참았던 눈물이었다. 나라는 나날이 부유해진다는데 왜 이 옥탑방 부부는 이다지도 힘들게 살아갈까 싶었다.
기억에 남는 집이 또 하나 있다. 그 집은 연립주택 반지하방이었는데 집 설계를 잘못해 수챗구멍이 출입문 앞에 나 있었다. 하루는 심방을 가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눈앞으로 휙 지나갔다.
“이놈의 쥐새끼가 목사님 계신데…”
집사님은 어지간히 난처했던지 기도 중에 벌컥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런 일이 있나 싶어 제법 놀랐는데 같이 간 교인들은 놀란 눈치가 아니었다. 그 시절 옥수동과 금호동에는 반지하방에 쥐가 드나드는 게 예삿일이었다.
심방을 다니면서 ‘비닐침대’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됐다. 달동네 주민 중에는 병에 걸렸거나 연세가 들어 대소변 가리기 힘든 이들이 많았는데, 그런 가정은 으레 비닐침대를 썼다. 침대나 요를 비닐로 감싸 비닐침대를 만들면 오물이 생겨도 걸레로 쓱 닦아낼 수 있어서 이불빨래 수고를 덜 수 있었다.
아파트 단지가 밀물처럼 들어서고도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했다. 달동네 원주민들은 높은 분양가를 내고 임대아파트에 들어갔는데 같은 단지 안에서도 일반 분양아파트와 많은 것이 달랐다. 상대적으로 작은 평수에 출입구와 관리사무소가 구별되는 것은 물론이고 주민들 간 교류는 엄두조차 못 냈다. 임대아파트는 단지 내에서 동떨어진 섬이었다. 달동네 때는 그나마 모두가 가난해서 덜했지만,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후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을 더 느끼고 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3794&code=23111513&sid1=fai&sid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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