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신문칼럼
동네 주민들이 2011년 옥수중앙교회 식당에서 열린 짜장면 잔치에서 짜장면을 먹고 있다.
옥수중앙교회에 부임하고 몇 년 안 됐을 때였다. 하루는 친구인 김관선(산정현교회) 목사에게 전화가 왔다. “호 목사, 짜장면 좋아해?”
웬 싱거운 농담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군대에서 만난 분 중에 압구정동에서 중국집을 하는 장로님이 있는데 우리 교회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2001년부터 매년 구제와 장학에 1억원 이상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돕고 싶어 한다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좋아하고말고. 열 그릇도 먹을 수 있어.”
그다음 주부터 우리 교회에선 매주 토요일 짜장면 잔치가 벌어졌다. 장로님은 아이스박스에 100그릇 치면, 커다란 솥에 짜장 소스를 담아오셨다. 손님은 교회 근방에 사는 어르신들이었고 교인들이 잔치 도우미로 나섰다.
낮 12시부터 시작했는데 성격이 급한 어르신들은 한 시간 전부터 교회에 오셨다. 식탁 가운데는 후식으로 함께 드실 수 있게 바나나 귤 같은 과일을 놓아 드렸다. 어르신들이 맛있게 짜장면을 드실 때면 장로님은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셨다. 장로님은 “돈 벌 때보다 몇 배는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매주 짜장면을 대접하는 일이 돈도 들고 몸도 고단한 일일 텐데 한결같은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섬겼다.
그렇게 잔치를 하는 사이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있었다. 어르신들이 후식으로 내놓은 과일을 드시지 않고 약속이나 한 듯이 주섬주섬 호주머니에 넣는 것이었다. 짜장면을 드시고 배가 불러서 나중에 드시려나 싶었다.
궁금하던 차에 하루는 한 할머니께 “여기서 드시지 그러세요. 나중에 드시려고요”하고 넌지시 여쭸다. 할머니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갔다. “우리 영감님한테 미안해서…. 집에 누워계신데 이거라도 가져다 드려야지.”
적잖이 놀랐다. 나름 어르신들의 마음을 알고 애써 잘 섬겨드린다고 생각했지만, 갈 길이 멀구나 싶었다. 어르신 대부분은 가족들 생각에 과일을 못 드셨다. 병환으로 누워 있는 남편 생각에 할머니는 과일을 먹지 못했고 어린 손주를 키우는 할아버지는 자기보다 손주 입에 과일 들어가는 게 더 행복했다.
다음 주 토요일부터는 과일을 다르게 내놓았다. 귤은 껍질을 까서 접시에 담고 바나나는 먹기 좋게 잘라서 내놓았다. 자장면 한 그릇 드시러 힘들게 교회까지 오신 어르신들에게 과일 한 조각이나마 드시게 하고 싶었다.
“나중에 가실 때 바나나 하나씩 드릴 테니까 어서들 드세요.”
어르신들은 그제야 과일을 입에 넣으셨다. 문득 어릴 적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잔칫집에 다녀오실 때면 늘 떡이나 전, 고기를 종이에 둘둘 말아 품에 안고 오셨다. 그리고 당신은 잔칫집에서 배불리 먹었다며 잔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자식들 옆에서 물에 식은 밥을 말아 드셨다. 어르신들은 그렇게 과일 한 조각에 행복했고 그 모습이 우리 엄마인 양 나도 행복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43979&code=23111513&sid1=fai&sid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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