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가진 자들에게는 겨울이 따뜻한 계절이겠지만
없는 자들에게는 겨울이 몹시 춥고 배고픈 계절입니다.
오랜 전 이야기지만 크리스마스 때
어느 가난한 집을 라면과 떡국을 가지고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든 부인의 얼굴이 퉁퉁 부어 누워 있었는데
방은 냉방이고 아무도 그를 돌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떠날 무렵, 술에 만취한 한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바로 집주인이었습니다.
나는 그 때 정색을 하고 부인이 이처럼 아픈데 왜 돌보지 않고 술만 먹느냐고 말을 건넸더니
그는 반은 화를 내고 반은 울면서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이유를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대들 듯이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고 세 끼 밥을 걱정하지 않고 먹는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굶어 사는 심정을 어찌 알겠습니까?
12월이 되면 그 때 그 남자의 표정이 늘 되살아납니다.
이 땅에는 이런 가난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특별히 화려한 도시의 그늘에 수없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과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도 있고 내일도 그들은 역시 존재합니다.
겨울이면 특별히 갈 곳도 없는 그들,
그래서 더욱 하늘을 쳐다보고 울어야 하는 그들입니다.
이 땅에 숨 쉬고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귀한 사람들입니다.
비록 그들이 못 가진 자이건 능력이 없는 자이건
모두가 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임하실 때
말구유에 오셨다는 사실은 가장 예수님다운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그 자체도 기적이요 충격이지만
하나님께서 말구유에 오셨다는 사실은 더 놀라운 충격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면 본질이요,
전부라고 한다면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편10편 12-13절을 보면 다음과 같은 절규의 시가 있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잊으셨다거나 무시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악하고 교만한 자들이 세상적으로 부와 권력을 얻고 가난하고 진실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박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시하기 때문에
이 경건한 시인은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침은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4절에서 그는 이렇게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자니이다.”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악을 보고 계시며
친히 주의 손으로 모든 불의를 심판하시려고 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 번째는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학대하는 악한 무리들을 몰아내는 일입니다.
가난한 자를 돕는 최선의 길은 가난한 자를 더욱 가난하게 하는 악한 무리들을 꺾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할 것은 정부는 악한 집단이요,
있는 자는 악한 계급이라는 식의 투쟁은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방법이지
성경의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그 악한 자가 어떤 특정한 계급이 아니라
누구든지 악한 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기 위한 두 번째는
가난한 자에 대해서 실제적인 관심을 갖고
그들을 찾아가서 구체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말로만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이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말만 하고 있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에 참여하자는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실제로 가난한 자들과 억압된 자들을 위한 봉사는 많이 하고 있는 반면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유 투쟁을 해야 한다고 외치는 자들은
정치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이론을 전개할 뿐이지
실제로 그들이 사회에 봉사했거나 참여했다는 실증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난한 자들에게 따뜻한 애정과 사랑을 가지고 돌보는 데 있습니다.
그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고난을 나누면서 돌보는 일입니다.
이 시편의 시인이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라고 외친 소리의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들의 외침과 하소연을 들어주고
악한 무리들을 내어 쫓고 그들을 구체적으로 돌보다 주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2023년 저물어 가는 한 해 예수님 오신 성탄에
다시 한번 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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