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대충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다. 고난의 원인이 다른 데서 발생하여 나에게까지 미친 경우이다. 둘째는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한 고난이다. 이러한 고난은 자기의 잘못과 실수로 인하여 당연히 받게 되는, 어떠한 유익도 존재하지 않는 고난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고난은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거나, 진리를 행하기 위하여 헌신하다가 얻게 되는, 고난이다.
문제는 우리가 받는 고난이 어떤 형태의 것이든 고난을 받는 태도가 고난 그 자체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애매하고 억울한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분노하고 소리 지르지 고 반항하지 않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참으면 아름다운 선을 이루게 된다는 성경 말씀이다.(벧전2:19)
역사는 선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을 통하여 정화되고 새로워진다. 그들의 고난과 애통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어둠과 썩음으로 인하여 죽음의 행진곡만이 울려 퍼졌을 것이다. 여기에 세상을 향하는 그리스도인들과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과 고난 받는 교회 상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동시에 마태복음 5장 10절의 말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는 말씀도 묵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경건한 고난을 받는 자는 자연히 애통한 심령을 갖게 된다. 그는 기막힌 심정을 가지고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갈망하게 되며 고난과 애통은 동시에 한데 어울려 하나님의 심정에 도달하게 된다. 거기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만나면 참 위로를 받고 고난을 이길 능력을 얻는다.
고난을 통한 애통은 어떤 것일까? 애통이란 죄에 대한 슬픔이요 깊은 고통을 내포한 아픔이다. 이 애통은 자기의 죄에 대한 심각한 통증이다. 단순한 죄에 대한 고백과는 다르다. 고백을 넘어선 격렬한 통증이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애통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진정한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낙관은 사물을 위장하기 쉽지만 애통은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게 된다. 전도서 7장 4절에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 집에 있느니라.”고 하였다. 이 애통은 자기의 죄를 보게 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죄를 보면서 대신 애통하고 대신 속죄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형제의 허물이 곧 나의 허물이요, 이 민족의 죄가 곧 내가 짊어질 죄임을 깨닫게 한다. 상한 마음이 되어서 꺼져가는 등불처럼 상한 갈대처럼 된 상태이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부지중에 세 천사를 극진히 대접하게 된다. 그 때 이 세 천사가 아브라함에게 기한이 차서 내년 이맘 때 사라가 약속의 아들을 낳을 것과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것을 미리 말해 주는 장면이 창세기 18장에 나온다.
아브라함이 상한 심령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와 “주여!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겠나이까?” 하며 용서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서 우리는 이웃의 죄를 대신해서 애통해 하는 마음을 본다. 요즘 우리 주위에는 남의 허물과 죄에 대해서 정죄하고 고발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졌다. 반성하는 듯하며 모든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못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자처럼 영웅처럼 그리고 하늘의 심판자처럼 무섭게 불의와 죄악을 정죄한다. 교회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새벽마다 교회의 모든 죄가 내 죄인 것처럼 대신 속죄하고 기도하는 자는 없을까? 민족의 이 엄청난 고통과 죄악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대신 속죄양이 되어 중보 기도하는 자는 없을까? 아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는 사람들, 대신 애통하고, 대신 고난을 겪는 사람들을 이 땅 곳곳에 숨겨 두셨을 것이다.
이 땅은 아직도 진정으로 애통하고 침묵 속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기도하며 행동하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5월은 애통하는 사람들로 행복한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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